사이버 통제법에서 사이버 인권법으로!

사법부의 독립과 통신비밀‘공유’법 (박경신)

 

[기고] 사법부의 독립과 통신비밀‘공유’법 / 박경신

 

한겨레 2009-04-05 일자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을 반대하는 이들은 ‘휴대폰 감청 불가’를 외치고, 찬성하는 쪽에서는 ‘감청이 어려운 휴대폰이야말로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며 필요성을 주장한다. 현행법상 휴대폰 감청은 법적으로 가능하나 기술적으로 어려워 통신사업자들에게 협조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이번 개정안의 핵심이다. 필자는 휴대폰 감청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나 사법부의 독립이라는 기본 전제가 확립되기 전까지는 감청 범위의 확대에 반대한다. 통신비밀보호법은 독재정권 시절 횡행하였던 국가기관에 의한 불법 감청을 막기 위해, 모든 감청에 헌법상의 영장주의-즉 수사기관으로부터 독립적인 사법부가 범죄 발생의 개연성을 서면으로 인정하였을 때만 압수/수색이나 구속이 허용된다는 원리-를 적용하자는 취지로 1994년에 탄생한 ‘좋은 법’이다. 특히 피감청자가 모르는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감청은 ‘수색’ 의사가 공지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일반 수색보다 훨씬 프라이버시의 침해가 크기 때문에 법원 허가의 요건도 더 엄격하고 피감청자에게 별도의 통지 의무도 규정하고 있다. 반대로 어떤 번호 또는 아이피(IP)와 언제 통신했는가 등의 정보(통신사실 확인자료)는 통신의 내용을 포함하지 않음은 물론 통신의 연결 및 진행을 위해서는 통신자가 어차피 통신사업자에게 ‘공개’해야 하는 정보이므로 일반적인 수색의 경우보다 수사기관이 더욱 쉽게 취득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우리 사법부가 감청을 허가함에 있어 감청 대상자들의 프라이버시를 수호하는 독립적인 구실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불분명하다. 2000년대 들어 감청 신청 기각률은 평균 2%대이고 통신사실 확인자료 취득 신청의 기각률은 1% 미만이다. 우리나라는 감청 허가에 대한 판례가 없어 낮은 기각률에 대한 평가도 불가능하다. 미국은 감청이 기각된 판례가 많이 있다. 우리나라는 수색 및 감청영장이 발부된 뒤에 그 영장 발부의 불법성을 다투는 절차가 없어 기본적으로 피의자는 수사기관들의 수색 및 감청에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다.

 

또 통신사실 확인자료의 취득 허가 요건이 너무 느슨하며, 감청 기간이 2개월 내지 4개월로서 미국이 테러 및 총기사건 등의 위험까지 고려하여 정한 30일에 견줘 너무 길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피감청자 통보 시점이 기소나 불기소 결정 이후라서 수사가 길어지면 아주 오랫동안 감청 사실을 모르게 된다. 미국의 통신비밀보호법(ECPA)은 감청 허가가 기각되거나 인용되면 무조건 통지하도록 하고 있어 감청이 신청만 되어도 감청 대상자는 통보를 받는다.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 휴대폰 등으로 감청 범위가 넓어지는 것은 반대한다. 같은 취지로 개정안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정보를 통신사실 확인 자료에 포함시켜 훨씬 더 쉽게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반대한다.

 

더욱이 지피에스 위치 정보는 통신자가 통신을 위해 통신사업자에게 ‘공개’한 정보가 아니므로 통신사실 확인 자료도 아니다. 공공장소에서의 미행은 영장 없이 시행될 수 있지만 사적 공간으로의 ‘미행’은 일반적인 영장을 필요로 한다. 이번 개정안이 상정하고 있는 지피에스 정보는 5m 이내까지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사적 공간으로의 미행이다.

 

가장 결정적으로 감청 협조 의무가 부과되는 대상은 접속서비스 제공자뿐만 아니라 포털이나 웹호스팅 업체와 같은 ‘부가통신사업자’까지 포함하고 있는데, 군소업체들을 포함하는 이렇게 많은 사업자들이 타인들 사이의 대화 및 통신 내용을 국가에 넘겨줘야 한다면 이 법은 ‘통신비밀보호법’이 아니라 ‘통신비밀공유법’이라는 이름이 어울린다.

 

박경신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

의견을 남겨주세요

스팸방지 질문 [새로고침]을 클릭하시면 다른 문제로 바뀝니다. 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다른 문제로 바뀝니다.

트랙백주소

http://nocensor.jinbo.net/webbs/trackback.php?board=nocensor_6&id=26주소복사

~ ~